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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적 노욕에 착취된 시네필의 열정
제목 보수적 노욕에 착취된 시네필의 열정
작성자 대표 관리자 (ip:)
  • 작성일 2012-11-05 10:53:03
  • 추천 추천 하기
  • 조회수 307
  • 평점 0점

보수적 노욕에 착취된 시네필의 열정 

 

-‘대종상’ 논란에 부쳐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제49회 대종상’ 결과에 대해 말들이 많다. <광해: 왕이 된 남자>가 총 22개 부문 중 15개의 부문을 수상했다. 그러자 역시나 여기저기서 수근거림이 들려온다. 그런 상이 있기는 했지, 대종상 아직도 하는구나, CJ가 영화산업도 모자라 영화상도 독점한 것인가, 저런 인사가 우리영화를 심사할 줄 알았다면 아예 출품하지 않았을 것이다…….이런 수사는 실상 비판의 언어가 아니다. 그것은 차라리 짜증의 언어에 가깝다. 

   나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비판이든 짜증이든 그것에 관심을 두는 것 자체가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더구나 이미 그것에 대한 비난들이 숱하게 제출되었던 터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지금 나는 그것에 대해 뭔가 한 마디 해보려는 참이다. 물론 뻔한 얘기일 수 있다. 하지만 뻔하다고 해서 간과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에 대해 침묵하는 것이 그것을 배제하는 게 아니라 그것에 대해 암묵적으로 동의해버리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거기에는 짜증의 언어 정도로 끝내서는 안 될 어떤 착취의 풍경이 도사리고 있다. 

   엄밀하게 말해 <광해>가 15관왕을 차지한 것 자체가 문제될 것은 없다. 단 하나의 작품이 대부분의 상을 휩쓰는 것보다 여러 영화가 골고루 수상하는 게 분배의 원칙에 부합한다는 의견은, 배려의 미덕이긴 하지만, 절대불변의 원칙인 것은 아니다. 달리 말해 단지 독식했다는 이유만으로 비난을 쏟아낸다면 ‘대종상’ 주최 측이나 <광해> 입장에서는 다분히 억울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다음의 질문이 자연스럽게 뒤따라야 한다. <광해>의 만듦새는 독식의 자격이 있는가? ‘대종상이 아니라 대중상’이다는 표현처럼 지나치게 대중의 눈치를 본 것은 아닌가? 그런데 이런 질문 역시 논란의 핵심을 찌르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광해>라는 텍스트를 분석하는 게 목적이 아니기에 상세한 논의는 생략하지만, 올해 개봉한 영화들 중 전문가나 대중 모두에게 골고루 지지받은 작품 목록에 <광해>를 제외할 수 없는 노릇인 것만큼은 확실해 보인다. 15관왕이 지나치긴 하지만 무작정 불합리한 것만은 아닌 것이다. 작품성에 대한 수치화는 일정 부분 주관성이 가미될 수밖에 없고 각자의 의견이 절대평가의 틀에서 ‘우연히’ 일치해버린다면 15라는 숫자도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항변도 일정 부분 일리가 있다는 뜻이다. 

   알다시피 ‘대종상’은 두 번의 심사과정을 거친다. 예심과 본심이 그것이다. 겉으로 볼 때 그것은 절차의 투명성을 담보하는 듯 보인다. 심사과정에 일반대중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도모하자는 것, 그리하여 예심을 통째로 그들에게 맡기자는 것! 그 결과 평소 한국영화를 아끼는 일반관객 50명이 개인 시간을 쪼개가며 3주간 출품작 모두를 감상하고 치열한 토론과 고심을 거쳐 본심으로 넘어갈 후보작들을 선정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렇게 넘어간 작품을 대상으로 본심위원들 각자가 점수를 부여하고 그것의 합계가 곧 수상작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이렇게만 따질 때 <광해>의 싹쓸이는 상향식 시스템에 의한 투명한 결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이 지점에서부터 심사위원의 자격 논란이 끼어든다. <광해>에게 상을 안긴 당사자들의 평균 나이가 대략 70세라는 것, 그 중 몇몇 원로 영화인은 독재정권 하에서 반공영화를 찍기도 했던 구시대의 전형이라는 것, 뉴라이트 출신 인사들의 지나친 보수성이 객관성을 담보하기 힘들다는 것, 요컨대 ‘대종상’은 단지 그들만의 리그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외부 세력이 입김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일부 네티즌의 의심에 주최 측은 내부에서의 결과공개조차 생중계 불과 1시간 전에 이뤄졌기 때문에 그런 가능성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답변했다. 그런데 이는 반은 참이나 반은 거짓이다. 중요한 것은 수상작을 선정하는 과정과, 그것을 수행하는 심사위원을 선정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사안이라는 사실이다. 주최 측이 해명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전자와 관련된 사안들일 뿐이다. 그러니까 수상작 선정 말고 심사위원 선정은 누가 무슨 기준으로 어떻게 이뤄진 것인가? 

   한편, ‘대종상’은 예심과 본심이 철저히 이원화되어 있다. 겉보기와는 달리 일반인들의 심사 결과는 수상작 결정에 그다지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거칠게 말해 실상 예심은 하나마나한 과정인지도 모른다. ‘작품상’의 경우만 따져 봐도 그것은 자명하다. 상식적 수준에서, 작품성과 흥행성을 골고루 인정받아 ‘작품상’ 후보에 오를만한 작품은 일 년에 많아봤자 다섯 편을 넘기 힘들다. <피에타>와 <은교>와 <도가니> 그리고 <광해>와 <부러진 화살>이 일반관객들이 본심으로 넘긴 작품상 후보들이었다. 성향에 따라 <범죄와의 전쟁>이나 <건축학개론> 정도가 추가될 수 있겠으나 그렇다고 장삼이사의 틀을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을 예선 심사위원의 열정과 노고를 무시하는 것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그들의 수고를 헛되게 만드는 물구나무 선 구조가 중요하다. 아무리 머리를 맞대고 의논해도, 두세 편도 아니고 다섯 편을 선정하는 것은, 어쩔 수 없이 뻔하고 싱거운 결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나아가 예심에서 1등으로 올라간 작품이라고 해도, 더구나 1등과 2등의 격차가 크다 하더라도, 본심에서 그것은 완전히 처음으로 리셋된다. 예심이 본심으로 번역되는 순간 선정 목록만 남고 선정 의견은 완전히 무시되는 것, 자생력을 잃고 그저 본심 어르신‘님’들의 선택을 용이하게 도와주는 도구적 리트머스 정도로만 기여할 뿐인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런 식으로 편리하게 추려진 목록을 바탕으로 평균 연령 70세의 보수적 인사들이 각자 점수를 부여한다. 나는 지금 독재정권에 복무한 원로들이 심사위원으로서의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는 게 아니다. 뉴라이트 계열의 인사가 합리적인 영화 감식안을 가졌을 리 없다고 역설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들의 과거와 이념적 성향이 심사위원으로서의 자격마저 박탈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에 대한 감정적인 판단 여부와 떠나 그들 역시 영화인 중 일부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그게 아니라면 ‘좌파척결’ 따위를 문화적 슬로건으로 내건 이명박 정권과 그것의 안쓰러운 귀결 중 하나로 볼 수 있는 이번 ‘대종상’ 사태와 다를 게 뭐가 있는가?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간단하다. 그들은 심사위원의 자격을 갖췄다. 단, 특정 세대와 특정 성향을 대표할 뿐이다. 때문에 그들의 심사는 ‘1/n’이어야 한다. 하지만 ‘대종상’은 그것을 곧장 ‘1’로 확정해버린다. 누가 어떤 절차를 거쳐 뽑은 지도 모르는 불투명하기 그지없는 심사위원들이 전체를 선언해버린다. <광해>의 독식이 문제가 아니라 독식된 심사위원 구성이 문제이고, 지엽적 의사를 전체로 둔갑시켜버리는 반민주적이고 불공정한 시스템이 문제인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 단지 짜증의 언어만으로 넘겨서는 안 될 착취의 풍경이 도사리고 있다. 예심에 참석한 50명의 일반인들이 고작 몇 십 만원의 심사비를 벌어보자고 거기에 참가했겠는가? 그저 한국영화가 좋아서, 그 마음을 뭔가 능동적으로 표현하고 싶어서, 자신의 의견이 ‘대종상’이라는 역사의 일부분이 된다는 사실에 뭔가 뿌듯함을 느껴보고 싶어서, 각자의 스케줄을 희생시켜 가면서까지 하루에 세 편씩 3주간 출품작 모두를 꼼꼼하게 체크했던 게 아니겠는가? 그러나 ‘대종상’은 결과적으로 오로지, 불투명하게 선택된 심사위원들의 편향된 심사에 ‘상향식 의사결정’이라는 거짓 외양을 덧칠하는 위해서, 그들의 순수 열정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 착취한다. 거짓 투명성을 과시하고 보수적 상스러움을 그럴 듯하게 치장하기 위해 50명의 순수한 노고를 악용한다. 

   ‘대종상’이 진정 사과해야 할 대상은 생중계를 보다가 짜증이 나서 채널을 돌린 시청자도, 독식했다는 이유 때문에 죄 없이 죄가 생긴 <광해> 관계자들도, 시상식 중간에 자리를 뜬 김기덕 감독이나 중국의 장예모 감독이 아니다. 그들이 사과해야 할 대상은 바로 그들 스스로의 반쪽, 즉 예심을 수행한 시네필의 열정이다. 그런 맥락에서 곰곰이 생각해보면 <광해>의 15관왕은 비난의 대상이라기보다 박수의 대상인지도 모르겠다. 심사 결과가 ‘우연히’ 일치했기에 망정이지 반대로 ‘우연히’ 엇갈려 독식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대종상’의 퇴행적 속살은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본심 심사위원들의 몰개성적 감식안에 감사의 말씀이라도 전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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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 : http://www.munhwada.com/home/m_view.php?ps_db=argument&ps_boid=2&ps_mode=modif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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