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웹진은 소설가 김서령님의 문화이야기 입니다.
심심하고 외로웠으니까
제일 재미있게 본 드라마를 꼽으라면, 나도 있다. 십 년도 더 넘은 것인 듯한데 “네 멋대로 해라”라는, 여배우 이름은 기억나지만 남자배우의 이름은 또 가물가물한, 아무튼 그걸 꼽았다. 그 드라마 이야기를 할 때면 아아, 첫 장면부터 정말 매혹적이었어! 나는 감탄을 그칠 줄 몰랐다. 하지만 그래봤자다. 나는 드문드문 시간이 날 때만 보았고 마지막 방송분은 아예 보지 않았다. 시한부 삶을 살던 남자 주인공이 병원으로 실려가는 장면에서 그 전회가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그러니까 주인공이 살아남을는지 혹은 애인을 두고 슬프게도 죽을 것인지 마지막 회에서 결판이 날 것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결말이 그다지 궁금하지 않았다. 쉽게 말해, 나는 드라마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던 거다. 혼자 사는 내 집의 텔레비전을 가끔 들여다보며 어디 곰팡이가 피진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종종 한다.
그런 내가 14부작 드라마 한 시리즈를 모조리 보았다. 제때 시간 맞추어 채널을 돌릴 줄은 몰라서 지난 방송 보기를 누르고, 또 7천원을 결제하기까지 했다. 한 달 동안 무제한으로 그 채널을 보는 값이라 했다. 리모컨으로 결제까지 할 수 있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응답하라 1997>. 대단할 것도 없는, 그저 동창생들끼리 추억을 속살거리는 드라마였다. 빈백소파에 몸을 누이고 혼자 낄낄, 드라마를 보면서 나는 내 친구들 한 무리를 떠올렸다. 트위터를 시작한 지 3년이 조금 못 되었다. 아이폰을 손에 쥐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띄우다보니 몇몇 친한 이들이 생겼고 또 동갑내기들이 눈에 보였다. 우리는 조금 심심했기 때문에 동갑내기 모임이나 만들어볼까, 그런 시시한 이야기를 꺼냈던 거다. 기자 하나, 영화 프로듀서 하나, 연구원 하나, 그리고 나였다. 2년 전 일이다.
<사진출처는 응답하라 1997, TVN>
내 직업은 소설가, 그리고 내 전공은 문예 창작이다. 주변은 온통 작가이거나 작가 지망생이고 또 출판 관계자들이다. 학교 때에 영화학과 친구들과 자주 어울렸기 때문에 영화 일을 하는 친구들이 조금 있는 정도다. 네 명이 작당했던 동갑내기 모임은 멤버가 쑥쑥 불어나기 시작했다. 처음 모임에서 우리가 밤을 꼬박 새며 떠들 수 있었던 건, 아마 각양 각색의 직업을 가진 친구들을 한꺼번에 만난 즐거운 호기심 때문이었을 거다. 작곡가와 엔지니어, 스포츠 에이전트와 앵커와 스튜어디스, 또 번역가와 소설가, 방송국 PD와 영화 PD, 마케터와 잡지 편집장과 은행원, 큐레이터와 화가, 의사와 한의사, 배우와 가수와 대학 강사가 한 자리에 모이다니. 우리는 매일 만났다. 만날 때마다 새로운 얼굴들이 보였다. 세상에는 직업들도 참 다양해서 기상캐스터예요, 하는가 하면 쇼핑호스트예요, 하기도 했다. 매일 만난다 한들, 질릴 수가 없었다. 멤버가 백육십 명을 훌쩍 넘어버리니 생전 연락하지 않고 지내던 내 초등학교 동창이 둘이나 끼어 있을 정도였다.
매일 만나면서 그런 얘기를 했다.
“우리를 만나기 전에 얘들은 도대체 뭘 하면서 살았을까.”
그러면서 까르르 웃었다. 누군가 대답했다.
“심심했어.”
또 누군가 말했을까.
“외로웠지.”
뜬금없는 이야기 같았지만 우리는 곰곰 생각해보았다. 심심하고 외로웠을까.
한 친구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아이가 둘이거든. 처가 쪽 식구들이랑 가끔 만나 점심을 먹는데 보통 중국식당엘 가. 아이들이 여럿이다 보니 사람 수대로 음식을 다 시키진 않잖아. 항상 두 그릇 정도 덜 시켜. 남길 테니까. 그러다보면 요리가 나올 때마다 어른들에게 음식 덜어드리고 또 아이들 덜어주고. 난 자꾸 풀떼기만 먹게 돼. 십 년쯤을 그런 것 같아. 나도 고기 먹고 싶은데. 그냥 그렇게 됐어.”
우리는, 가만히 웃었다. 너도 나처럼 어른 놀이가 마음에 들지 않는구나, 싶었다.
또 한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내가 제일 똑똑한 줄 알았는데. 연륜이 쌓이면 더 똑똑해질 줄 알았는데. 이제 나는 더 이상 똑똑하지 않아. 프로그래머란 직업이 그래. 언제나 후배들이 더 똑똑해. 벌써 무능해졌다는 생각이 들어. 회사는 한참 더 다녀야 하는데.”
연봉도 제일 높을 것 같고 학벌도 제일 좋을 것 같은 녀석이 그렇게 말할 때는 그만 쓸쓸해졌다. 우리가 벌써 주눅들 나이였나.
어느 녀석은 잃어버린 자아를 찾는 중이라며 어울리지도 않게 진지한 척을 했다. 얼마 후 만났을 때 우리가 물었다.
“그래, 자아는 다 찾았어?”
녀석이 대답했다.
“그만 하기로 했어.”
“왜?”
우리가 다시 물었다.
“와이프가 그만 하고 정신 차리래.”
다들 낄낄거렸다.
결혼을 하지 않은 친구는 결혼을 한 친구에게 하소연을 했다.
“외로울까봐 겁나.”
결혼을 한 친구가 토닥였다.
“결혼하면 외롭고 괴로워.”
언제 쓸쓸했냐는 듯 또 웃음이 터지고 만다.
삼십대 후반이 참 야릇한 나이라는 것을 새삼 생각한다. 갓 서른이 되었을 때엔 설레었는데. 정말 어른이 되기 위한 준비를 시작한 것만 같았고 무얼 하며 인생을 살 지 고민하느라 바빴던 이십대에 비하자면 이제 출발선에 서서 요이땅 하는 기분이었던 거다. 그래서, 정신없이 뛰었는데, 살짝살짝 돌아보며 남들과 제법 엇비슷한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에 안심하고 뛰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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