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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렌에 대항한 율리시즈(오디세우스)의 영웅담은 유명하다. 율리시즈는 사이렌의 노랫소리에 대항하기 위하여 선원들에게는 솜으로 귀를 막고. 자신은 돛대에 몸을 묶은 채 그녀의 노래를 듣고도 유혹을 이겨내어 위기를 넘긴다. 여기서 율리시즈는 비평가에 비유된다. “그런 의미에서 율리시즈는 또한 분석가들의 아버지가 아닐 것인가. 그는 말한다. ‘들어라. 가능한 한. 많이. 귀 기울여 들어라. 그러나 빠져들지는 말라’고.”(28쪽) 비평가는 문학이라는 허상에 귀를 막으면 안 된다. 하지만 그 환상에 빠져들어서도 안 된다. 기둥에 몸을 묶고. 돌아가야 할 이타카를 꿈꾸며. 사이렌의 노래를 처음부터 끝까지 들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이렌이 부르는 노래의 유혹에 빠지지 않기 위하여 율리시즈가 묶인 기둥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그것은 시대마다. 비평가마다 조금씩은 달리 해석되어 왔다. 저자는 여기서 윤지관을 언급한다. 민족문학이라는 거대한 기둥에 묶여 오직 이타카만을 향한 그의 비평을 언급한다. 하지만 그런 일관된 이상으로 사이렌의 허상과 싸우며 도착하게 될 이타카는 비평가에게 무엇인가. 모든 텍스트가 파헤쳐져 그 실체를 드러낸 이상이 기다리는 꿈의 도시인가. “알고 보면 ‘이타카’는 또 하나의 도시일 따름이다. 만일 거기에 의미가 있다면. 사이렌의 노래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이르렀다는 사실이 아닐까? 그렇다면 비평가여. 들어라. 저 낯설고 불길한 1990년대 이후의 노래를.”(33쪽) 현대문학에서 “신경숙과 배수아. 박민규와 김애란 등에서 리얼리즘은 갱신되어야 한다. 또한. 소설가 전성태가 마주한 ‘한계선’에 대해서 우리는 더 많이 이야기를 해야 한다. 즉. 한 젊고 성실한 작가의 글쓰기를 민족문학이라는 해묵은 주형 속에 더 이상 가두어놓을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34쪽)
율리시즈는 1990년에 미국의 우주 왕복선 디스커버리호에서 쏘아올린 무인 태양관측선의 이름이다. 지난해까지 신호를 보내오다가 우주 속으로 소멸해 버렸다. 태양을 향해 날아가는 동안 얼마나 뜨거웠을까. 지금도 어느 우주 공간을 떠다닐 그의 잔해를 생각하면 조금 쓸쓸해진다.
기둥에 자신을 묶고 마녀 사이렌의 노래를 향해 나아갔던 율리시즈는 모든 비평가들의 이름이다. 이 책에서 나는 대체로 1990년대 이후 우리문학이라는 잊혀진 태양을 향해 나아간다. 도대체 그곳에서는 어떤 노래가 들려오는 것일까. 나는 또 어느 지점에서 흔적도 없이 소멸되어 버릴까. 이 책의 또 다른 제목은 당연하게도 율리시즈의 공포(Ulysses In Horror)다. 어떤 경계를 넘어서는 순간에 율리시즈는 사이렌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