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배일기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처음 든 생각은 ‘도대체 왜?’와 ‘과연 어떻게?’라는 의문이었다. 유배인들이 왜 그런 힘든 상황 속에서 일기를 기록하여 남기려고 했는지,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기록이 가능했는지 궁금했던 것이다. 물론 연구를 시작하고는 곧 위의 의문들은 우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일기라고 해서 꼭 매일 기록한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유배라고 해서 상상하는 것처럼 기록이 어려운 상황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훨씬 복잡하고 흥미로운 궁금증이 처음의 의문들을 대신해서 계속 생겨나는 바람에 아직까지 유배일기 언저리를 맴돌고 있다.

이 책은 크게 2부로 구성되었다. 1부, 1장에서는 한글 유배일기 연구의 필요성을 말하고, 2장에 한글 유배일기 작품에 대한 서지적 설명을 배치하여 앞으로의 논의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3장에서는 한글 유배일기가 여성 주도 사대부 가문 이야기판의 성립, 여성의 한글사용 확대 및 한글 텍스트에 대한 수요 증가를 배경으로 형성되었음을 밝혔다. 1장에서 3장까지의 내용이 한글 유배일기를 깊이 이해하기 위한 기초적, 배경적 정보들이었다고 한다면 4장은 본격적으로 유배일기를 분석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 장에서는 유배의 특수한 양상이 일기에 어떻게 반영되어 나타나는지를 중심으로 유배일기의 문학적 실상을 살폈다. 먼저 유배지에서의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는 상황에서 작성된 유배일기의 경우 유언 주체의 목소리와 유언을 기록하는 일기 서술자의 목소리가 합쳐진 독특한 유언문학적 특성을 갖게 됨을 밝혔다. 다음으로 유배여정과 유배지에서의 생활을 통해 견문한 인정세태와 낯선 풍속 등을 유배일기가 어떤 식으로 기록하고 있는지도 살폈다. 원하지 않았겠지만 유배인들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밖에 없었고, 다양한 풍속을 접할 수밖에 없었다. 이럴 때 유배인들은 주로 자신의 입장과 이해관계에 따라 인정과 풍속들을 평가하기도 하고, 미처 깨닫지 못했던 다양한 인간군상과 낯선 풍속들에 놀라거나 감탄하기도 하였는데, 이처럼 유배인들이 유배과정에서 겪은 경험의 생생한 기록이 일기에 남아있음을 밝혔다. 마지막으로 5장에서는 한글 유배일기가 가진 가족문학으로서의 의의에 대해 서술하였다.

2부, 1장에서는 한문 유배일기 <태화당북정록>을 중심으로 유배인의 꿈과 결핍의 관계에 대해 논의하였다. 유배라는 사건은 유배객들에게 가족 이산이라는 예상치 못한 새로운 결핍 상황을 발생시키기도 하고, 기존에 가지고 있던 결핍을 해소하기 어려우리라는 어두운 전망을 하게 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유배기간의 추이에 따라 이러한 결핍의 상황은 다른 양상으로 꿈에 반영되어 나타나고 있었다. 2장에서는 단종 전설을 중심으로 하여 유배 인물 전설의 신원적 성격과 그 서술방식에 대해 살폈다. 이야기의 전승자들은 만약 단종의 원혼이 있다면 그 원혼이 느꼈음직한 슬픔과 억울함, 분노에 감정이입하여 그 슬픔과 분노에 공감하고 억울함을 풀어 나가는 것을 이야기로 만들어 전승함으로써 일종의 설화적 진혼을 수행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표기문자는 ‘한글’이고 내용요소는 ‘유배(流配)’이며 장르는 사실 기록을 본질로 하는 1인칭의 문학 ‘일기(日記)’라는 것으로 한글 유배일기를 규정할 수 있다. 조선후기인 18세기에 주로 기록된 8편의 한글 유배일기들이 ‘한글’을 선택해서 유배를 기록한 이유 및 결과와 ‘유배’의 특수한 양상이 어떻게 글에 반영되었는지를 살폈다.
유배일기 중에서도 하필이면 한글로 기록된 것들에 관심을 기울인 이유는 유배라는 특수한 경험과 한글의 어울리지 않는 조합 때문이다. 유배는 대부분 양반 남성들에게 내려진 형벌이다. 그런데 한글 유배일기는 이런 양반 남성의 경험을 한글로 기록한 것이다. 여성이 자신의 경험을 한글로 기록하였다면 이상한 일이 아니겠지만, 경험의 주체가 남성인 유배의 일을 굳이 한글로 기록하여 전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아울러 유배의 모습이 글의 내용에 어떻게 반영되었는지도 살펴보았다. 유배는 경우에 따라서는 죽음을 전제로 하는 형벌이므로 이 절체절명의 상황이 유배일기에 어떻게 반영되었는지 검토하는 것은 중요하다. 또한 유배일기는 낯선 곳으로의 여정과 낯선 곳에서의 생활을 기록하게 된다. 유배 노정에 들어서면 어쩔 수 없이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되고 낯선 것들을 보게 되는데, 이처럼 타의에 의해 확대된 경험의 세계를 유배객들은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그 양상도 살펴보았다. 마지막으로 유배라는 달갑지 않은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심리적, 정신적 투쟁의 모습이 일기에 어떻게 반영되었는지도 살펴보았다.
한글 유배일기의 서술방식 및 내용의 특수성은 방대한 한문 유배일기를 이해하는 데에도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것이다. 한문 유배일기에 대한 시론(試論)으로서 앞으로의 연구 방향에 중요한 지침을 줄 것이라고 기대한다. 즉, 한글 유배일기의 연구는 한문 유배일기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유배문학 전반에 대한 이해를 위한 과정으로서의 의의를 지니는 것이다.

조수미

부산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조선시대의 유배일기를 포함한 일기류 작품을 주요 연구대상으로 삼고 있으며, 현재 부산대학교와 인제대학교에 출강하고 있다.

• 민족문화학술총서를 내면서
  머리말
  
  
  제1부 조선후기 한글 유배일기 연구
  
  1장 한글 유배일기 연구의 가치
    1. 유배일기의 문학적 가치와 한글 유배일기
    2. 유배일기 연구의 성과
  
  2장 한글 유배일기의 예비적 고찰
   
  3장 한글 유배일기의 형성배경
    1. 사대부 가문 이야기판의 성립
    2. 다양한 한글 텍스트에 대한 요구 증대
  
  4장 유배체험의 양상과 서술방식
    1. 후명(後命)과 죽음에 이르는 과정
    2. 유배의 여정과 유배생활의 실상
  
  5장 한글 유배일기의 가족문학적 의의
  
  6장 유배일기 연구의 전망
  
  
  제2부 유배문학 연구의 전개
  
  1장 유배일기 <태화당북정록>에 기록된 '꿈'의 양상 연구
    1. 유배일기에 기록된 꿈
    2. 태화당과 <태화당북정록>
    3. 결핍상황 및 결핍해소에 대한 욕망과 꿈
    4. 유배객의 내면과 꿈의 기록
  
  2장 유배 인물 전설의 신원적 성격과 서술 전략 연구: 단종 전설을 중심으로
    1. 귀양 전설과 진혼
    2. 단종 전설의 화소
    3. '진혼(鎭魂)'을 위한 서술 전략
    4. 귀양 전설의 문학적 가치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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