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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 때리는 시간
제목 멍 때리는 시간
작성자 대표 관리자 (ip:)
  • 작성일 2013-02-01 09:32:09
  • 추천 추천 하기
  • 조회수 628
  • 평점 0점

 

오늘의 웹진은 소설가 서유미 님 문화시론입니다.

 

 

서유미(소설가)


    빠름, 빠름이라고 시작하는 간결한 CM송을 알고 있다. 자주 듣다 보니 귀에 익고 입에도 붙어 한동안 따라 부르곤 했다.

   광고와 광고 음악은 그 시대의 유행이나 생활상, 사람들의 욕망을 가장 빠르고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그 CM송이 통신 회사의 광고에 등장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가사의 뜻은 더욱 생동감 있게 와 닿는다. 속도의 빠름은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가장 정확하게 짚어낸, 1순위로 내세워야할 덕목인 것이다. 소비자들은, 그러니까 스마트 폰을 사용하는 모든 사람들은 스마트 폰을 쓸 때만큼은 인내심을 발휘하거나 그와 비슷한 단어를 쓰는 것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손가락 끝으로 지배하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모두 스피드광이다. 그것이 속도의 전쟁을 부추겼다.

   사실 빠름의 열풍은 특정 분야나 특정인들에게 국한되어있는 게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 퍼져서 사람들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굼뜨고 눈치 없는 사람보다 빠릿빠릿하게 움직이고 눈치가 빠른 사람을 선호하고, 결정이나 결단은 빨리, 칼 같이 내리는 게 좋다고 여긴다. 어떤 선택 앞에서 머뭇거리고 망설이는 사람들은 신중하고 배려심이 깊다는 인상을 주기보다 우유부단하고 답답하다는 오해를 받기 일쑤다. 쉽게 감동하고 금세 식는 것을 냄비 근성이라며 비판하던 때도 있었지만 이제는 그것조차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아가는 추세다. 패스트푸드, 패스트패션은 이미 생활 깊숙이 파고들었다.

    물론 그런 이면에 슬로우 푸드를 지향하고 느림의 미학을 즐기려는 움직임도 확산 중이다. 차 대신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늘었고 제주도의 올레 길엔 자연의 풍광 속에서 천천히 걷기 원하는 사람들이 몰리고 있다. 템플 스테이와 전원주택의 유행도 그런 흐름을 드러내고 있다. 이렇게 속도의 쳇바퀴에서 멀미를 느끼는 사람들도 많지만, 빠름이 시대의 요구, 시대의 색깔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런데 이렇게 숨가쁘게 돌아가고 빠르게 움직이고 얼른 결정하라고 종용하는 삶 속에서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멍 때리는’ 사람들이 많아졌음을 느낀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 역시 멍 때리는 시간이 늘었다. 

   지하철이나, 버스 안, 카페나 도서관처럼,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가면 스마트 폰을 손에 든 채 뭔가에 몰두하고 있는 사람들만큼이나 멍 때리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그들은 단박에 눈에 띈다. 시선은 공중의 어느 한 곳에 고정되어 움직이지 않고 몸도 부드러운 정지 상태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한참동안 미동도 없이 그런 자세를 유지하는 사람도 있고, 그런 채로 버릇처럼 머리카락 끝을 만지거나 손톱을 깨물거나 부르튼 입술을 잡아 뜯는 사람들도 있다. 눈을 뜬 채 자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미간에 주름이 져서 심각한 고민에 빠진 것 같은 사람도 있다.
 
   멍 때리기 역시 범국민적인 현상이라 인터넷에는 가끔 연예인들이나 운동선수들이 멍 때리고 있는 사진이 올라오기도 한다. 어느 유명한 가수는 자신의 취미가 멍 때리기라고 밝혔고, 누군가는 숨겨진 보석 같은 관광지를 소개하면서 멍 때리기 좋은 곳이라고 말했다. 특기가 멍 때리기인 사람도 있고 멍 때리는 시간이 자꾸 늘어나서 고민이라며 상담을 요청하는 글을 올려놓은 사람도 있다. 누군가의 다이어리 앞에는 큰 글씨로 멍 때리기 금지라고 쓰여 있기도 했다.

   멍 때리는 걸 잠깐 딴 생각에 빠졌다,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였다, 라고 표현해도 무방하지만 사실 그건 잡생각을 하는 것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딴 생각이나 잡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며 생각이 뻗어나가서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드는 거라면, 멍 때릴 때의 머릿속은 표면만 놓고 보자면 백지처럼 하얗게 되는 거라고 할 수 있다. 실타래가 엉키거나 풀리는 게 아니라 엉켜있던 실타래 자체가 사라져버리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멍 때리기는 방전의 상태나 휴지통 비우기와 비슷하다고도 할 수 있다.

   멍 때려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멍 때리기가 의도나 계획 하에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어느 순간 갑자기 빠져들게 되는 거라는 걸. 해야 할 일이 많고 마음이 급할수록, 머릿속의 정체가 심할수록 자주 멍 때리게 된다는 걸. 집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할 때 난데없이 정신 줄을 놓게 된다는 걸. 그걸 막아보려고 커피도 마시고 드링크제도 마시고 에너지 음료에도 의존해보지만 잠을 쫓을 수는 있어도 멍 때리는 걸 근원적으로 막을 수는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수업 중에, 회의 중에, 촬영 중에, 심지어는 시험을 보는 도중에도 멍 때린 적이 있음을 고백한다. 나 역시 뭘 쓸까, 고민하다가 문득, 퇴고하다가 갑자기 멍 때릴 때가 있다. 시간을 쪼개 써야 한다고, 내일까지는 이 일을 꼭 끝내야한다고 자신을 다그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퓨즈가 쓱 나가버리고 마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자신을 몰아붙일 때 흔히 말하는 마감의 신이 나타나 생각지도 못했던 문장이나 아이디어를 선사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건 극히 드물고 대부분은 부작용과도 같은 멍 때림의 깊은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리게 된다. 그래서 정신을 차리고 시계를 보면 짧게는 몇 분에서 길게는 삼십 분 가량의 시간이 지나가버린(사라져버린) 걸 확인하게 되고 경악하고 만다. 차라리 제대로 쉴 걸, 편하게 잠이나 잘 걸, 하고 후회해 봐도 소용없다. 

   그건 아마 우리의 뇌와 무의식이 쉬지 않으려고, 빨리 해결하려고 몸부림치는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휴식으로 이끄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실 멍 때리기는 아무 것도 안하고 가만히 있는 상태를 말한다. 그리고 그건 사람에게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간이기도 하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처럼, 평소에 자발적으로 휴식 시간을 가지면 느긋함을 기르고 여유롭게 사는 법을 익히면 상대적으로 멍 때리는 시간이 좀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쉽지는 않다.
 
   물론 주변의 몇 사람에게 물어보니 멍 때리는 시간 때문에 자책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지만 은근히 즐기거나 휴식의 한 방편으로 삼는다는 사람도 있었다. 인생의 동반자쯤으로 여기게 됐다고나 할까. 

   이 글을 쓰면서 나 역시 빨리 써야하는데, 라는 조바심과 함께 여러 번 멍 때렸다. 하지만 덕분에 ‘멍 때리는 시간’과 관련된 단편 소설의 초고까지 구상하게 되었으니 이쯤 되면 멍 때리는 시간의 도움을 받았다고 해도 좋지 않을까.

더 많은 평론을 보시고 싶은 분은 아래 웹진 <문화다> 링크를 클릭해 주세요.

 

링크: www.munhwad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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