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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한 내일에게
제목 심심한 내일에게
작성자 대표 관리자 (ip:)
  • 작성일 2013-01-04 10:12:57
  • 추천 추천 하기
  • 조회수 655
  • 평점 0점

오늘의 웹진은 소설가 정용준 님의 문화 시론입니다.


   연말이다. 오늘이 지나면 이 해가 끝나고 다음 해가 온다. 시간에 끝이 어디 있어, 불만스럽게 중얼거려도 어쨌든 오늘이 지나면 나는 한 살을 더 먹고 12월도 끝나고 부담스럽기 짝이 없는 1월이 온다. 작위적으로 물로 그어놓은 투명한 선분 하나가 희미한 얼룩을 남기고 사라지고 있는 밤 10시 35분, 끝이 없어도 끝을 내야 하는 쓸데없는 상징 앞에 서서 나는 입술을 꾹 다물고 이 해가 끝장나는 풍경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다.

   힘이 없다. 의욕도 없고 재미도 없다. 뭔가 이상한 일이 일어날 것 같던 마야의 12월 21일은 실망스럽게 지나갔다. 정말 종말이 올 거라고 믿진 않았지만 기이한 일이라도 일어나길 바랬다. 가령 큰 별이 떨어진다거나, 땅이 흔들린다거나, 우박이 떨어진다거나, 하다 못해 미확인 비행물체가 상공을 떠도는 모습이라도 목격하길 원했다. 하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 그럴 줄 알았지만 종말의 이벤트는 너무도 시시하게 끝나고 말았다. 오래전에 약속했던 만남이 펑크 난 것 같았다. 그래도 혹시 몰라 종말이 평소에는 사 먹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비싸고 이상한 모양의 초콜릿을 사서 하나씩 까먹었다. 그러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진짜 종말이 온다면 초콜릿 따위를 먹기 위해 시간을 쓰지 않을 거야.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하는 걸까. 무엇을 하는 게 옳은 걸까. 그 이후로는 생각이 진행되지 않았고 생각도 사라졌고 혀끝을 아리게 하는 단 맛도 사라지고 말았다. 그저 내일은 무조건 온다는 명징한 확신 속에 조금 울적했을 뿐이다. 이미 종말이 와 있는 것 같았고 눈에 보이는 풍경들이 모두 종말의 징후처럼 보였다.

   어떤 근육을 써야 힘을 낼 수 있을까. 어떤 음식을 먹어야 힘이 나는 걸까. 나는 잘 모르겠다. 기력이 없고 힘을 내고 싶은 긍정적인 마음 같은 것도 없다. 투표했던 후보가 대선에서 떨어졌다. 오년 전에도 투표했던 후보가 떨어졌는데 이번에도 그랬다. 처음에는 당황했고 나중에는 분노했으며 이내 우울한 기분을 느끼다 결국엔 인정하게 됐다. 지인들과 동료들은 대부분 나와 뜻이 같았기에 더욱 놀랐다. 실망스러운 마음을 감출 길이 없었고 표정을 어떻게 관리해야 할 지 몰라 한동안 거울을 쳐다보지 않았다. 내 세계가 이렇게 좁은 곳이었나, 라는 회의감이 들었고 거리를 걷는 사람들이 모두 무섭고 낯설게 느껴졌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런 종류의 저조한 감정은 흔한 감정이었다. 이제껏 살면서 주도적인 입장에 서 본 적이 거의 없었다. 나는 누군가와 겨루는 게 싫었고 뭔가를 주장하기 위해 애쓰고 힘  쓰는 게 싫었다. 밖에서 안을 바라보는 아웃사이더의 삶이 멋지고 그럴듯하다는 것은 오래전부터 깨달았던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좀 달랐다. 너무도 분명하고 명징한 바람이었고 정의라고 믿었던 당연한 가치였다. 울분을 품고 삐딱해지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바보 멍청이들 같은 언론과 매체를 비웃고 세상을 향해 냉소했다. 애국자들이 부르짖는 신념과 충성의 눈물을 조롱했다. 모든 상황에 무차별적으로 적용하는 그들의 신념을 논리적으로 반박하며 하나 하나 깨부수고 싶었고 애국이라는 뜨거운 마음 이면에 자리 잡고 있는 부동산에 대한 충성심을 까발리며 그들에게 모종의 수치심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졌다. 더 이상 싸울 필드가 없다. 동료들은 심각한 내상을 입었으며 손에 쥐고 있는 가느다란 연필은 무기라고 하기엔 너무 연약한 도구였다.      

   맘먹고 우울하게 지내기로 했다. 늘 실망을 안겨주는 사람을 계속 사랑하기로 결심한 사람처럼 마음이 쓸쓸했고 참담했다. 견디기 힘들었고 그래서 견디지 않았다. 방심했고 방치했다. 뭔가를 이겨내기 위해 애쓰지 않으니 모든 게 이상한 방식으로 편하고 나른해졌다. 안 괜찮은 것도 괜찮게 느껴졌다. 기분이 나빠지고 싶어서 일부로 아무 도움도 받지 않는 사춘기 소년처럼 상한 감정과 낙심한 마음에 몰두했다. 그러다 문득 생각했다. 이게 무슨 짓인가. 내 자신이 갖고 있는 포즈와 비아냥거림이 민망했고 부끄러웠다. 

   망가지는 건 정상이다. 누구나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망가지는 걸 낭만화시키는 것은 진짜로 망가지는 거다. 그것은 회복하고 싶어도 회복할 수 없는 불구의 내상과 같다. 나는 망가진 느낌과 어떤 통증을 감각하고 싶었을 뿐 마음과 생각까지 망가지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어쨌든 살기로 마음먹었다. 살기가 어렵게 느껴지면 힘쓰고 애를 써서라도 살아내기로 했다. 책상에 멍하게 앉아 하루를 무의미하게 보내는 것을 멈췄다. 아무 책이나 펼쳐 보이는 문장을 읽었고 몇 페이지 남지 않은 2012년 다이어리의 빈 칸을 채우기 시작했다. 강한 비위를 갖자. 라고 썼고, 어쨌든 나는 잘 했다. 라고 썼다.     
    
   쓸쓸하고 단정하게, 열기 없고 고요하게 이 해가 가고 있다. 나는 달력을 넘기고 1월의 날짜들을 속으로 헤아리고 있다. 조급한 마음도 들지 않고 허무한 마음도 들지 않는다. 그렇다고 열정이 샘솟거나 새로운 마음이 싹 트는 것도 아니다. 살다보면 이것도 저것도 아닐 때가 있다. 이것도 싫고 저것도 싫을 때도 있고 반대로 둘 모두 좋을 때도 있다. 나는 좀 더 유연하고 느슨한 마음으로 기대되지 않는 내일을 기대한다. 억지로 희망을 희망하는 것도 관둘 것이다. 사랑을 사랑하는 짓도 더 이상 하지 않을 것이다. 해피 없이도 뉴 이어를 견딜 수 있는 단단한 마음을 갖고 싶다. 

   동료들과 지인들에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라는 주술 같은 이상한 인사 대신 그건 너의 탓이 아니야, 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래, 그건 우리의 탓이 아니었다. 우린 지지 않았고 실패하지 않았다. 자고 일어나면 세상은 똑같거나 원치 않은 방향으로 더 안 좋아질 것이다. 기대하고 바라던 멋지고 다이나믹한 내일은 오지 않겠지만 어쨌든 내일은 온다. 심심한 내일이고 지루한 내일이다. 하지만 그것도 최악의 내일은 아니다, 고 믿고 싶다. 그러니까 심심한 내일일 뿐 절대 외로운 내일은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해가 오면 희망찬 새해는 밝았다! 같은 글은 쓰지 않겠다. 희망이 가득 찬 내일은 아직 멀었다. 너무 멀리 있어 벌써 숨이 차고 지친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을 것이고 뭔가 계획을 세울 것이고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나씩 해 나갈 것이다. 

   아직 오지 않은 희망찬 내일을 바라고 기다리는 것을 유일한 희망으로 삼겠다.

더 많은 평론을 보시고 싶으신 분은 아래 <웹진 문화 다> 링크를 클릭해 주세요.

링크: www.munhwad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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